[초점] '환경평가협의회' 주민대표 참여 의무 법조항 해석 엇갈려
환경단체 "중대한 하자, 법적 판단 받아야"...道 "중대한 하자 아냐"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는 오등봉 민간특례사업이 이번엔 환경영향평가법 상의 절차적 하자 논란이 불거졌다. 사업 과정에서 시행된 '환경영향평가협의회'가 제주도정의 탈법으로 취지를 잃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이는 법적 판단에 따라 지난 5년간 제주에서 실시된 모든 환경영향평가의 정당성까지 무너뜨리는 것이어서 추후 파장이 더 커질 여지도 있다.

환경영향평가협의회란 환경영향평가에 돌입하기에 앞서 사전에 협의하는 과정을 거치는 조직이다. 어떤 것을 평가할 것인지, 평가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주민의견 수렴 절차는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등이 대부분 협의회 과정에서 결정된다.

민간특례 사업으로 추진된 중부공원과 오등봉공원의 경우 환경영향평가협의회 구성은 총 10명으로 이뤄졌다. 당연직 위원장인 제주도 환경정책과장을 비롯해 학계, 건축계, 시민단체 인사 등 9명의 위촉직 위원이 참여했다.

◇ 환경영향평가법 '주민대표 참여' 의무조항, 제주에선 '남 일'

제주참여환경연대의 문제 제기는 환경영향평가협의회를 구성함에 있어 관련법 상의 의무조항을 누락했다는데 있다.

환경영향평가법 제8조 제2항에 따르면 환경영향평가협의회는 '환경영향평가분야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로 구성하되, 주민대표, 시민단체 등 민간전문가가 포함되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같은법 시행령 제4조 제2항에는 이를 보다 구체화 해 '해당 계획 또는 사업지역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거주하는 주민대표', '시민단체에서 추천하는 민간전문가' 각 1명 이상을 포함시키도록 했다.

제주참여환경연대는 우선 '시민단체에서 추천하는 민간전문가' 요건과 관련, 추천 요구를 받거나 추천한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시민단체 관계자가 참여하기는 했지만, 추천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보다 큰 문제가 된 것은 '주민대표'가 누락됐다는 점이다. 관련법과 시행령에는 이 주민대표가 '참여할 수 있다'가 아닌, '참여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으로 명시했다. 해당 사업에 대해 주민들이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직접 평가 과정을 감시하라는 취지다.

실제 타 시도에서 수행된 환경영향평가협의회의 경우 시민단체 전문가 외에 '주민대표'를 구성원에 포함시킨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등봉공원과 같은 민간특례사업으로 시행중인 광주 쌍령근린공원 도시공원, 진주 장재공원 도시공원 사업에도 주민대표가 협의회에 포함돼있다.

◇ 제주특별법 이양된 환경영향평가 권한,  道 "주민대표 적용 범위 달라"

문제의 시발점은 제주의 경우 타 지역과 다르게 제주특별법의 특례에 따라 환경영향평가협의회 관련 업무가 제주도로 이양됐다는데서 출발한다.

환경영향평가 협의 등에 관한 특례사항을 규정한 제주특별법 제364조 제10항은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한 환경부 장관의 권한을 제주도지사의 권한으로 한다는 문구가 명시됐다.

제주도는 이 특례에 따라 2017년 1월 자체 지침을 마련해 협의회를 운영해 왔다. 해당 지침 상 위원 구성은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 중 환경단체 소속 위원 1인 포함(부득이한 경우 민간전문가 대체)'라고 규정했다.

제주도는 특별법의 특례로 환경영향평가 협의 권한이 위임된 만큼, 제주도 차원에서 관련 지침을 만들어 구성된 협의회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오등봉공원 환경영향평가협의회의 경우 환경단체의 역할을 보다 확대해 10명의 심의위원 중 3명 몫을 배정했다고 설명했다.

'주민대표'가 누락됐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해석을 달리 했다. 표현상으로는 주민대표가 '사업 부지 내 거주자'로 오인될 수 있지만, 관련법 상 주민대표는 '해당계획 또는 사업지역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거주하는 주민대표'라고 명시된만큼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는 도민이라면 누구든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즉, 해당 조항은 광역자치단체 내 기초자치단체 관계자의 참여를 의무화하는 것에 목적을 둔 조항이어서 단일 생활권인 제주에서는 적용 범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 타 지역의 협의회에 포함된 주민대표는 해당 기초단체의 이장협의회, 통장협의회 등의 관계자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엇갈리는 시각 "법 취지 위반" VS "중대한 하자 아냐"

법률 전문가의 해석도 엇갈린다. 문제를 제기한 제주참여환경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학준 변호사는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것은 환경부 장관이 하는 일을 도지사가 대신하는 것인데, '어떻게 할 것이냐'는 법에서 정한대로 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협의회에 주민대표를 포함시키라는 것은 법에서 명확하게 정하고 있다. 이것을 제주도에서 지침이나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다"며 "그럼에도 지침을 만들어 주민대표 참여를 배제했다는 것은 법을 위반한 것이다. 단순 권한 이양과는 다른 문제"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A변호사는 "깊게 들여다보지는 않은 사안"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관련법 상의 목적이나 취지 자체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하자가 있다면 모를까, '주민대표'에 대한 해석은 재량의 영역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A변호사는 "결국, 법도 상식을 근간에 둘 수 밖에 없다. 판단 주체가 법제처가 됐든, 법원이 됐든, 그간의 환경영향평가 행위 자체를 모조리 뒤집는 판단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피력했다.

다만, 일반적 인식과는 달리 법 해석은 엄연히 달라질 수 있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해도 제주도의 자체적인 판단만으로 의무 절차를 누락한 것이 문제라는 반론이 나온다. 환경영향평가협의회 관련한 환경부 장관의 권한을 위임받은 것일 뿐, 기존 권한을 뛰어넘는 권한 행사는 불법이라는 주장이다.

법제처는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을 설명하고 있다. 법률이 위임하는 사항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한정하지 않고, 특정 행정기관에 입법권을 일반적·포괄적으로 위임하는 것은 금지된다는 원칙이다. '주민대표 참여'의 의무화를 분명히 한 환경영향평가법을 뛰어넘어 의무조항을 누락시킨 제주도의 지침이 애초에 유효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 앞서 시행된 환경영향평가 50여건도 위기? 환경단체 "법적 판단 요구"

환경영향평가협의회 관련 지침이 시행된 것은 2017년 1월이다. 이는 곧 2017년 이후에 진행된 협의회에서 단 한번도 주민대표를 참여시키지 않았다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주민대표의 누락에 대해 법적인 문제가 불거진다면 지난 5년간의 환경영향평가가 모두 부정될 수 있다. 제주도에 따르면 이 기간 중 수행된 환경영향평가는 대략 50개 내외다.

제주도는 아직 별다른 대응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주도 관계자는 관련 사항에 대해 법제처 등의 유권해석을 의뢰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시민단체에서 주장할 수는 있지만, 자체적으로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라며 "현재로서는 계획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관련된 내용은 이미 시민단체가 공익 소송을 제기하면서 다뤄지고 있다"며 "법원의 판단 등을 지켜보고 추후의 계획을 세워나갈 계획"이라고 거리를 뒀다.

반면, 문제를 제기한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대표는 "주민권리를 박탈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엄중히 평가돼야 한다"며 "별도의 소송 제기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고, 현재 진행중인 오등봉공원 공익 소송에 관련된 판단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홍 대표는 "단순 오등봉공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부공원을 비롯해 그간의 환경영향평가 절차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제주도의 대응을 토대로 헌법소원까지 고려하는 등 구체적인 후속방안을 논의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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